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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대화로 이야기의 시작을 열어보았어요 :-)



Q. 살면서 보았던 영화나 드라마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딱히 기억하는 건 없고 보는 것 자체를 즐겨요. 아이 덕분에 요즘은 만화영화만


초등학교 때 토요명화 많이 했었잖아요. 그거 보면서 세계를 알게 되잖아요. 그 때 키스를 어떻게 하지? 뽀뽀지 그 때는. 거울을 보고 키스 어떻게 하지 연습을 해봤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거울보고 연습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요.



Q. 첫 키스는?


2 때가 처음이었는데요. 별로 안 좋았어요.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더러운 기억 에헤헤


별로 상대가 존재감이 없어서 기억이 안나. 술 먹고 해서 그런가


제정신에 해도 술 먹은 기분이 나는데ㅎㅎ

 

- 20대였나. 딱히 별 기억이 없어. 그 때 술도 별로 안 좋아했는데.. 첫키스 상대가 존재감이 없는 거지. 궂이 그렇게 의미가 있나 하는 정도. 나의 첫 키스는 과연 누구였나.

 

- 너무 오래 전이라. 그냥 최근 키스 얘기하면 안돼요? ㅋㅋ






Q. 삶의 전환점과 지금의 나?


그냥 평범하고 밋밋하게 살아왔어요.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제가 26살에 결혼을 하려고 오래 사귀었던 친구랑 청첩장까지 다 찍고 파혼을 했어요지금 애 아빠 만나서 연애할 때도 늘 상대방이 나를 배려해주고 나한테 최선을 다하니까 좋았어요. 내가 못 하는 걸 채워준다고 생각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부분에 대한 간섭으로 바뀌고.. 그래서 헤어졌어요. 잠적해 있는데 그 때 준서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 삶은 롤러코스터 같은 삶이었어요. 쭉 올랐다가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그대로 가는 그 것. 돈이 있다가 돈이 없어지니까 좌절감도 심하고. 다 누리고 살다가 어느 순간 내가 책임져야 하는 누군가가 생기면서 오로지 내가 해내야 하고 이 아이는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미혼모를 위해 일하면서 사귀는 모든 사람들이 새로웠어요. 사회친구, 동네후배 아무 하고도 얘기 안 했어요. 그건 내 자존심이었어요. 인트리에서 만난 사람들 내가 힘들었던 시기를 이 사람도 힘든 거예요. 조금씩 남을 위해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 하고 있다는 걸 나중에 느꼈어요어찌보면 내가 돌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나한테도 무언가를 준 것 같아요상처라는 것, 그 모든 게 내 자신으로부터 돋아난 것이라는 걸 알려줬어요힘들었지만 저는 지금이 딱 좋아요.

 + 다 먹지도 못하면서 엄마가 해주는 음식 다 가져와요.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음식 언니들 조금 더 주면 저울 달아서 똑같이 달라고 해요. 왜 언니만 2포 줘?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 지금 남편은 욕심낸다고 싫어하는데. 저는 임신한 이후 7년간 엄마 밥 못 먹은 게 계속 서운함이 있는 것 같아요. 계속 그 허기는 채워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남자가 정말 잘 해줬어요. 늘 집에 데려다주고 회사로 데리러 오고. 그렇게 정이 들었는데 어느 날 느낌이 이상해. 임신을 한 거죠. 결혼식을 2월로 잡았는데 그 겨울부터

버는 데로 다 쓰는 사람이었는데 말을 많이 부풀려서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그 사람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재산에 대한 그 사람에 대한 것들이 거짓말이 많았어요.

거짓말이 들어났지만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회사에 다녔고 부모님한테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내가 왜 이런 취급을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런데 뱃속의 아이는 자라고 결혼식 날짜는 다가오는데 남자는 연락이 안 되기 시작했어요. 가족친지, 친구들한테 연락도 했고 웨딩촬영도 했어요. 그런데 촬영이 끝나면 또 연락이 안 돼. 그러다 가끔 연락이 오면 여행을 가자고 해요. 다 뒤집고 싶었는데 결혼식이 다가오니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러다 또 연락이 없다가 결혼식 날 나타나.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신혼여행도 잡을 수가 없었어요.

머릿속에 별 생각이 다 들죠. 결혼식에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데 어떻게든 치루긴 치뤘어요. 그러고 난 다음에 도저히 방안이 없으니까 둘이서 얘기를 했어요.

집에 가려고 했는데 노량진에서 회를 사가지고 오겠대. 그런데 그 이후로 나타나지 않았어요.


"복수해야 돼."

"복수요?"

"아니예요."

"어디 있는지 알아야 복수를 하죠."


언니랑 엄마랑 셋이 살았는데 저한테는 거의 엄마밖에 없었어요 저한테는. 엄마를 정말 좋아했어요. 때 아팠어요. 소리지르면서 잠꼬대를 하고 엄마 오늘 조심하라고 했는데. 갑자기 학교에 경찰이 찾아와서 엄마가 다쳤다고 말하는 거예요.

엄마가 폭행으로 다치셨다고 했어요. 법정에 가서 알았는데 범인이 엄마를 칼로 찔러서 죽였다는 거예요. 엄마 꿈이 너무 생생했어요. 그리고 남자들이 무서웠고 남자에 대한 복수심도 생겼어요. 담배도 배우고. 지금은 끊긴 했지만요학교도 전학가고 학교도 맨날 빠지고. 한참 방황하고 있을 때 아빠가 나타났어요. 그런데 아빠가 저를 때렸어요. 키우지도 않은 사람이 이제 나타나서 왜 나를 때리냐고 했는데 낳아준 것 만으로도 감사하라면서 때렸어요아빠도 그렇고 엄마 죽인 사람도 남자였고 그래서 남자가 너무 싫었어요

집을 나왔어요. 그러다 아이가 생겼고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무 무서웠어요. 언니도 결혼을 안 했고 나한테는 아이 키우는 법을 가르쳐줄 엄마가 없으니까. 지우자고 했는데 남자친구는 아이를 키워야겠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남친 부모한테 얘기를 했는데 남친 엄마도 지우라고 했는데 남친이 말렸어요. 그러다 임신 7개월쯤에 엄마가 헤어지라고 했다면서 갑자기 연락이 두절 됐어요. 계속 연락하는 저한테 계속 멈추라고만 했어요. 소송걸까도 생각해봤는데 아예 연관되는 것 자체가 싫었어요. 

아이 키우면서 우울증이 생겼어요. 사람 만나기 꺼려져서 사람이 찾아와도 문도 안 열어주고 그랬어요. 사회복지사 만나보라고 해도 무시하고 그러다가 한결이가 말이 트이기 시작하고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고 하니까 이대로 있어서는 안되겠다 싶더라구요그래서 정신증진센터에서 상담하고 우울증을 먼저 치료하기 시작했어요. 병원비를 지원해주시더라구요.





40대 되기 전엔 되게 불안했어요. 30대에 나는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40대가 되면 여성이 아닐거라고 생각한거예요. 40대의 그 두려움이 뭐였는지 사실 아직도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이고 더 이상 나에게 새로운 게 없는 거. 여자로써한 살 두 살 먹는데 굉장한 불안으로 다가왔어요. 그러고 50이 되니까 다시 시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이뤄내는 게 아니라 그냥 사는 거구나. 행복하지 않아도 사는거구나.

젊어서 고생 사서하는 게 아니라,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나는 의지 할 어떤 대상이 필요한 사람이더라구.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했어요. 꼭 사람이어야 하고 남자이어야 하는 게 아니라, 식물이어도 되고 동물이어도 되는구나


나랑 많이 다른데 이 사람하고 살면 마주보지 않고 같은 곳을 보고 살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자식도 4살 때부터 이미 내 소유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도 빨리 독립하길 바라거든요.

우리 셋이 행복하게 살려면 셋이 다 행복을 위해서 해야 할 게 달라. 하기 싫은걸 강요하지 말아야 하고 등등. 하지만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학습된 게 많아서 사람에 따라 안 지켜도 되는 게 있는데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그런 관계가족이라는 게 굉장히 얼켜있는데 내가 있고 상대방도 있어서 같이 살아도 되고 자유로우면 문제가 없는데 우리나라 가족문화는 서로 너무 얼켜있어서 독립적인 주체가 되기 어려워.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서 한 쪽에 의존적인 관계가 되면 부모 자식 간에도 그게 안 되는 거야




이야기들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터져나왔습니다.

3시간이 30분처럼 짧게 느껴지고 사연에 대해 깊이 알면 알수록 한결 편안하고 가까운 사이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솔직한 이야기들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노랫말로 담아내야 겠다는 불끈한 의지도 생겼지요. 오늘의 용기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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